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랜디 존슨 (문단 편집) ===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000003654.jpg|width=100%]]}}} || 1998 시즌이 끝나고 그해 겨울 자유계약선수가 되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치열한 영입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서태웅|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디백스의 4년 5,340만 달러 제안을 택하게 된다.[* 랜디 존슨의 집은 [[피닉스(도시)|피닉스]]이고, 가족들도 양키스 시절부터 피닉스에 살았다. 피닉스는 애리조나의 주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디백스의 홈구장인 [[체이스 필드]]가 피닉스에 있다.] 활약상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면 충분하다. '''MLB.COM 선정 역대 최고의 FA 계약 1위.''' FA 기간 동안 존슨은 '''4년 연속 [[사이 영 상]]과 [[워렌 스판 상]]을 석권하고, 2001 월드 시리즈 MVP에 올랐다.''' 야구선수의 나이가 만으로 35세면 기량이 떨어져서 신인들에게 자리를 위협받거나 벤치신세가 될 수 있는데, 이 양반은 그 나이에 약물을 했건 안 했건 당대 최고 에이스들과 슬러거들이 즐비했음에도 상대 팀타선을 초토화시켜버렸다. 게다가 애리조나의 홈구장 뱅크원 볼파크(현 [[체이스 필드]])는 '''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 친화 구장'''이다. 그런데 그런 구장에서 이런 사람같지 않은 성적을 올린 원투펀치 덕분에 당시의 라이트팬들에겐 타자친화 구장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4년 연속 사이 영 상을 쓸어담은 1999~2002년의 성적을 간단히 살펴보면 '''1999년, 17승, 9패, 271.2이닝, 2.48 ERA, 364 탈삼진, 12완투, 2완봉승 fwar 9.5 bwar 9.1''' '''2000년, 19승, 7패, 248.2이닝, 2.64 ERA, 347 탈삼진, 8완투, 3완봉승 fwar 9.6 bwar 8.1''' '''2001년, 21승, 6패, 249.2이닝, 2.49 ERA, 372 탈삼진,[* k/9이 무려 '''13.41'''이다.] 3완투, 2완봉승 + [[월드 시리즈]] 공동 MVP fwar 10.5 bwar 10.1''' '''2002년, 24승, 5패, 260.0이닝, 2.32 ERA, 334 탈삼진, 8완투, 4완봉승 + [[트리플 크라운]][* 좌완투수로는 [[스티브 칼튼]] 이래 최초. 9년후 [[클레이튼 커쇼]]가 이어 받는다.] fwar 8.1 bwar 10.7''' 4년간 '''81승, 27패, 1030이닝, ERA 2.48, 1417 탈삼진''' 연평균 '''20승''', 7패, '''258이닝''', ERA 2.48, '''354 탈삼진'''[* 2022년 기준 한 시즌 250이닝 이상 소화한 투수는 2011년 [[저스틴 벌랜더]]가 마지막이고, 350K 이상 잡아낸 투수는 존슨 이후 전무하다. 선발 투수의 평균 투구 이닝이 점점 줄어드는 현 추세를 봤을때, 상술된 존슨의 4년은 불멸의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클레이튼 커쇼]]가 2008년 데뷔 후 2014년까지 잡아낸 삼진 개수가 1445개로, 존슨은 커쇼가 7년 동안 잡아낸 삼진과 비슷한 개수의 삼진을 4시즌만에 잡아버린 셈이다. 동시기 [[아메리칸리그|옆동네]]에서 리그를 초토화시키던 [[페드로 마르티네즈]]와 함께 인간계를 아득히 초월한 성적을 찍었다. 이 4년간 [[케빈 브라운]], [[톰 글래빈]]과 정말 많이 붙었다. 2003년에 부상으로 잠깐 고생했지만 2004 시즌에 부활, 부실한 팀 타선과 수비 때문에 승수는 16승밖에(?) 못 찍었지만 만40세 역대 최고령 [[퍼펙트 게임(야구)|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는 등 여전히 리그 최고의 투수임을 증명하는 성적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승수가 아쉬웠던 탓에 1997년에 이어 또다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로저 클레멘스]]에게 사이영상을 내주고 만다. 하지만 약켓이 트리플크라운으로 랜디 존슨을 확실히 제압한 1997년과 달리 이번엔 현지는 물론 한국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당시 두 사람의 성적을 비교하면 로켓 18-4 214⅓이닝 2.98 218K. 빅 유닛 16-'''14''' '''245⅔이닝 2.60''' '''290K'''. 이때 클레멘스의 수상은 [[바톨로 콜론]] 수상과 함께 투승타타가 어느 정도 유효하던 지표였던 거의 마지막 사례로 여겨진다. 이후 랜디 존슨 사례 때문인지 2006년에 16승을 거둔 [[브랜든 웹]]이 논란 속에 NL 사이영상을 수상했고, 2010년 AL 사이영 투표에서 [[펠릭스 에르난데스|킹]] vs [[CC 사바시아|CC]]의 대결에서 킹이 사이영상을 탔다. 또한 클레멘스의 [[도핑|추악한 모습]]이 밝혀진 이후로는 랜디 존슨은 피해자로 평가받는데, 클레멘스의 1990년대 후반기는 스플리터 장착이 그의 성공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하는 반박 여론도 존재하지만, 2000년대는 이미 약빨을 받을 대로 받은 뒤로 여겨진다.] [youtube(G4Ft0afmk5g)] 물론 디백스 시절하면 가장 유명한 건 역시 2001시즌 원투펀치 파트너였던 [[커트 실링]]과 함께 엄청난 활약으로 팀을 우승시킨 것. 뉴욕 메츠와의 1999 NLDS 1차전에서 8.1이닝 7실점으로 거하게 망했던 랜디는 2년 후 월드 시리즈에서 양키스를 상대하면서 2차전 완봉을 하고서 6차전을 선발 등판하고 바로 다음날 끝장 승부에서 7차전 구원등판하는 위력을 보였다. 하긴 마무리 [[김병현]]이 두 게임이나 무너져버려서 어쩔 수 없었던 면도 있긴 했다. 2001년의 활약으로 [[플레이오프]]에 약하다는 이미지는 깨끗이 날아갔다. 커트 실링과 함께 2001 월드 시리즈 공동 MVP 선정. 자세한 사항은 [[2001 월드 시리즈]] 항목 참조. 그러나 이어지는 세인트루이스와의 2002 NLDS 1차전에서는 6이닝 6실점 10피안타(2피홈런)로 난타당했고 팀도 0:3으로 탈락했다. 이 시기 존슨은 '''페드로와 함께 최고의 투수'''였고 동시에 '''투타 합쳐서 배리 본즈 다음가는 2위'''로 페드로와 함께 언급되었으며, 매덕스/클레멘스를 포함한[* 1999~2003의 기록을 보면 랜디와 페드로가 각각 40.0-41.3의 fWAR을 기록했는데 3위인 마이크 무시나가 30.1에 불과했고, 매덕스와 클레멘스는 26.6-21.3의 fWAR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평균자책점로 봐도 페드로(2.10)와 랜디(2.66)만 2점대였고 매덕스(3.24)/클레멘스(3.99) 등 나머지는 다 3점대였다.] 다른 투수들과는 어느 정도 다른 레벨에 있음이 수치상 명백했다. 워낙 엄청난 피칭을 했던지라 '''메이저리그 역사상 페드로의 전성기와 비교가 성립하는 몇 안되는 투수'''였다. 랜디 존슨의 디백스 시절은 라이브볼 역대 최고의 투수 전성기 다섯 손가락 안에 그 어떠한 이견조차 없이 반드시 들어간다. 또한 역대 좌완투수 전성기 목록에서 클레이튼 커쇼나 샌디 코팩스도 가볍게 압살하는 성적이며, 다른 선수의 경우엔 진지하게 이걸 5년만 하더라도 충분히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성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